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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보다 나,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그럴지도. 나는 나에 대해 얘기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왜?"

"아무도 관심이 없을 만한 일을 자의식 과잉처럼 줄줄 늘어놓고 싶지 않아."

"내가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야. 기본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따지고 보면. 물론 예외는 있어. 너처럼 특수한 사정을 떠안은 사람에게는 나도 약간은 관심이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은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끌 만한 인간이 못 돼.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 얘기를 늘어놓을 마음은 나지 않아."

테이블의 나이테를 보며 평소에 생각한 것들을 책상에 늘어놓는 듯한 느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런 지론도 평소에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었다. 물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관심 있는데?"



***


"산다는 것은 ......."

"......."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거야."

아, 그런가.

나는 그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시선이며 목소리, 그녀의 의지의 열기, 생명의 진동이 되어 내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


진짜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몇 번이나, 정말로 몇 번이나,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이를테면 그거, 네가 첫사랑 얘기를 해줬을 때, 나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어. 호텔 방에서 술을 마셨을 때도 그렇고, 처음으로 내가 먼저 껴안았을 때도 그렇고.

하지만 나는 너와 연인이 될 마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연인이 될 생각은 없어...라고 생각해, 아마도.

어쩌면, 연인이 되었다면 꽤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걸 확인할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우리 사이를 그런 흔해빠진 이름으로 부르는 건 싫어.

사랑이라느니 우정이라느니, 그런 건 아니지, 우리는. 



***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람과 사람은 잘 헤쳐나갈 수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의 너와 나처럼.


***


그래서 그날 네가 돌아간 뒤에 나 혼자 울었던 거야. 

네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 날. 나에게 더 오래 살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해준 날.

친구라느니 연인이라느니, 그런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네가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으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이 단 한 사람뿐인 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어.

고마워.

17년, 나는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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